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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로마 관광명소 BEST 20 (+바티칸) 여행코스 추천! l 이탈리아 이상호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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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kimceo님의블로그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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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먹고찍고여행] 로마 둘째날 콜로세움~캄피돌리오 광장 : 인터파크투어 프리야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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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X 제 15편 – 전통과 역사의 도시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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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X 제 15편 - 전통과 역사의 도시
유럽 X 제 15편 – 전통과 역사의 도시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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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X 제 15편 – 전통과 역사의 도시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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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역사의 도시 “로마”

이탈리아의 수도이자 라치오 주의 주도로, 테베레 강 연안에 있다. 로마시의 행정구역 면적은 1,285km 2로 서울시의 2배 정도이고, 2014년 인구는 290여만 명이다. 로마시 권역의 인구는 430여만 명이다.

로마 대도 시현의 인구는 400만이 넘지만 밀라노나 나폴리 대도 시현에 비해 면적이 3~4배 넓은 편이고 되려 로마시의 면적과 밀라노와 나폴리의 대도 시현의 면적이 비슷하므로 세 도시 모두 300만 정도로 비슷한 규모의 도시라 볼 수 있다. 로마 건국 신화에 따르면 로마 건국 원년은 기원전 753년으로 2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얘기되지만, 인류는 그 전부터 이 지역에 정착하여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초기 로마는 라틴인, 에트루리아인, 그리고 사 비니인으로 구성되었다. 한때는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로서 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중심지였으며, 그 역사 덕분에 유럽 문명사회에서는 로마를 가리켜 ‘세계의 머리(Caput mundi)’, ‘영원한 도시(la Città Eterna)’라고 부른다.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로 로마시는 서서히 교황의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되었다. 서기 8세기부터 1870년까지 로마시는 교황령의 수도가 되었다. 이탈리아의 통일 이후 1871년에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수도로 자리 잡고 있다.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에는 고온 건조하다. 원래는 로마의 일부였으나 교황령으로써 독립한 바티칸 시국이 자리 잡고 있다. 법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나라이지만 역사·종교·문화적으로 이탈리아, 특히 로마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지역은 거리가 좁고 대부분이 테베레 강가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로마의 과거의 영광의 흔적인 기념 석조물의 대부분은 이 지역에 있다.

2015년 02월 07일 토요일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오전에 출발하여 로마 떼르미니 역에 도착!

숙소에 짐을 풀고 로마를 만끽하려고 자유 워킹투어를 시작했다. (자체적 투어ㅋㅋ;)

날씨가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 해서 사진 찍고 나서 보니까 이게 오늘이었는지 어제 였는데 엄청 헷갈렸다는..

우리는 로마에 왔으니 당연히 봐야 될게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며 걸어서 콜로세움까지 걸어갔다.

콜로세움 걸어서 가는 법은 구글 맵스를 치면 쉽게 나온다!

콜로세움 걸어서 가보세 ~

검색하면 이렇게 3가지 길이 나오는데 구경도 할 겸 제일 먼 길로 돌아서 왔다 ~ 걸어서 오는 길에는

첫 번째로 본 것은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이었다. 봤는데 봐도…. 역사를 모르니 ㅠㅠ

대략 난감 이었다. 너무 궁금해서 아쉬운 데로 구글에 쳐봤다.(그런데 요즘은 구글이 더 정확함;;!)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대성당이다. 성모 대성당 또는 성모 설지 전(聖母雪地殿)이라고도 부른다. 고대 로마 양식의 4대 성전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기독교에서 이 성당 외의 다른 대성당으로는 성 베드로 대성당,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등이 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은 1348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말미암아 손상을 입고 여러 번에 걸쳐 추가적인 건설 작업을 거쳤음에도 원래의 구조를 보존한 로마에서 유일한 대성당이다.

대성당의 이름인 ‘Maggiore’(마조레)는 ‘위대함’과 ‘주요한’이라는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로마의 성당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성당이라는 의미도 있다.

아비뇽 교황 시대를 공식적으로 마감하고 교황좌가 로마로 복귀하고서, 라테라노 궁전의 상태가 악화하였기 때문에 대성당이 교황의 임시 관저가 되었다. 교황의 관저는 나중에 지금의 바티칸 시국에 있는 바티칸 궁전으로 옮겨졌다.

로마의 골목 로마의 교차로 생각해보니 로마에는 신호등을 못 본 것 같고 교차로가 굉장히 많았었다.

이렇게 로마는 건물 하나하나의 역사가 엄청나게 깊다. 심지어 흙에도 역사가 있다는 소문이… 후들후들

마조레 대성당을 지나서 도착한 곳은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

산 피에트로 인 빈 콜리 성당 또는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은 로마에 있는 성당 가운데 하나이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웅장한 모세상이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사실 이곳은 크게 흥미를 못 느껴서 사진은 찍지 못했다.

걸어 다니면서 생각한 게 로마는 신호등이 없나?? 분명 차는 있는데 말이지.. 주로 교차로가 자주 등장했고 차가 분비지 않았다. 서울에 교차로가 있었다면 엄청난 교통체증이 생길 텐데..!

로마의 길거리 ~ 건축물도 대단하다. 어떻게 건물이 다 저러지 ~? 구글 맵스를 따라가다가 발견한 포로 로마노 자칫 발음을 잘못하면 큰일 나게 되는 포로 로마노! 이곳은 돌 , 흙 , 건물 , 건물의 위치 등등 하나하나가 전부 역사이고 유적이라고 한다. 잠시 포로 로마노에 대해서 소개하겠다.

포로 로마노

포룸 로마눔은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지로, 이탈리아 로마에 있으며 현재는 관광지로 매우 유명하다. 이탈리아어로는 포로 로마노라고 부른다.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293년에 걸쳐 로마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으나,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하고 수도 기능이 라벤나로 옮겨지면서 이민족의 약탈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부터는 그대로 방치하다가 토사 아래에 묻혀 버렸다.

포로 로마노는 내일 들어가서 직접 볼 것이니 그때 제대로 역사를 한번 다루겠다!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으로 이어지는 길에 있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가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로마 제정의 초대 황제 이자 로마 제국의 첫 번째 왕조(황조)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The Julius Claudius Family)”의 시조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27년부터 서기 14년까지이며, 죽은 뒤, 원로원과 민회에 의해 신격화되었다. 동시에 이후 모든 로마 황제들이 그의 황제 명인 ‘아우구스투스’와 ‘카이사르’를 이름으로 썼다. 또한 그를 기념하기 위해 기존의 “여섯 번째 달”(Sextilis)을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바꾸어 불렀다. 그의 뒤는 아내 리비아 드루실라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큰 아들이자 아우구스투스의 양자인 티베리우스가 물려받았다.

아우구스투스가 부탁해서 사진을 한번 찍어주고 이어서 콜로세움으로 쭉쭉쭉 드디어 너무 보고 싶었던 골로 세움에 도착!!

콜로세움(골로세움)

콜로세움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이다. 현재는 로마를 대표하는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동상(巨像:colossus)에서 유래한다.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 극장이었다.

역사에 대해 살펴보면

70년경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80년에 건축이 끝나 100일 축제 기간 동안 그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개막식을 올렸다. 콜로세움은 높이 48m, 둘레 500m 등 경기장 내부의 길이 87m와 폭 55m라는, 당시에 건립된 건축물 가운데 최대의 건축물이었다.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 레스)의 정원에 있던 인공 호수를 메운 자리에 세워졌다.

본래는 비공식 이름이었던 콜로세움(Colosseum)의 유래에 대해서는 원형 경기장 근처에 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청동상(Colossus Neronis)과 명칭이 혼동되었다는 설과 ‘거대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콜로 살레(Colossale)와 어원이 같다는 설이 있는데 중세에는 그 자체가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열리는 검투사 경기를 보러 찾아드는 5만 명가량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경기장은 또한 해상 전투를 재현하거나 고전극을 상연하는 무대로도 사용되었다.

검투사들은 보통 노예나 전쟁 포로들 중에서 운동 실력이 출중하고 용맹하게 잘 싸우는 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서로 결투를 벌이거나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사냥해 보여 로마 관중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으나, 검투사가 되면 이득도 있었다. 다른 노예들보다 생활환경이 훨씬 나은 군대식 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었고, 승리를 거둔 검투사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티투스는 등극하기 전인 70년에 유대 독립전쟁을 진압하고 10만 명의 포로를 데리고 귀환하였다. 그중 4만 명을 동원하여 콜로세움을 건축했다는 전설이 있다. 콜로세움은 검투사들끼리의 싸움이나 맹수들과의 싸움을 시민들에게 구경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콜로세움은 608년까지는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지만 중세에는 군사적 요새로 이용되다가 그 이후에는 성당이나 궁전 등의 건축에 사용될 자재의 제공 터가 되었다.

이 정도로 맛보기만 알아보고 내일 직접 들어가서 역사에 대해 배워볼 것이다. 로마는 너무 다양한 역사가 숨겨져 있어서 알면 알 수록 눈에 보이는 것 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래서 오늘은 들어가지 않고 쭈~욱 자유 워킹투어.. 그런데 말도 안 되게 30초 전에 구름이 맑았는데 갑자기 비가 온다.

내 모자를 때서 여친의 머리카락을 사수했다.(귀염 주의)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고 다시 하늘이 맑아졌다. 말도 안 되는 로마의 날씨. 적응 빨리 해야지 ㅠ 맑은 하늘의 분수를 보고 싶어서 간 곳은 트레비 분수!

트레비 분수 가는길

이번에도 구글 맵스의 힘을 빌려서 고고고 걸어서 금방 간다 ~ 천천히 한 30분 걸으니 도착!

그.. 그런데 분수가 공사 중 이었다 ㅠㅠ

트레비 분수

공사중인 트레비분수

로마에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분수이다. 높이는 25.9m, 너비는 19.8m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것으로는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것은 오랜 전통으로 남아있다.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거나 언젠가 다시 로마에 오게 된다고 믿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오른손에 동전 세 개를 들고 왼쪽 어깨너머로 던지면 행운이 온다는 말도 있다.

매일 3,000유로 정도가 트레비 분수대 바닥에 쌓이는데, 로마 시에서는 매일 밤 이 동전을 수거하여 로마 내 문화재 복원과 보호에 쓰고 있다. 한편, 자석을 이용해 이 동전을 훔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1453년 교황 니콜라우스 5세의 명으로 만들어졌으며 이후 1762년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설계를 공모하여 니콜라 살비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재 단장되었다.

폴리 궁전 앞에 분수를 설치한 형태인데, 해신 트리톤상을 중심으로 그 아래로는 말과 함께 두 개의 트리톤 상이 존재하고, 왼쪽은 격동의 바다를 오른쪽은 잔잔한 바다를 상징한다.

트레비 분수는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지친 로마 병사들에게 물을 제공해준 처녀 설화가 담겨있는 처녀의 샘을 수원으로 하고 있다. 트레비 분수 위 트리톤 상위에 서있는 네 명의 여인은 사계절을 상징하며 트리톤상 옆에 있는 두 명의 여인은 각각 건강과 풍요의 여신을 상징한다.

공사 덕분에 분수의 동상들은 바로 눈앞에서 볼 수 는 있었지만 물에다가 동전을 던지는 로망은 없어졌다. ㅋㅋ 트레비 분수의 로망(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한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두 번을 던지면 평생의 인연을 만날 수 있고, 세 번을 던지면 이혼.) 그래도 아쉬운 데로 물에 있는 곳에 던지긴 했는데 번몇 던진지는 비밀! 🙂 트레비 분수의 관광이 끝나고 가고 싶은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서 엄청난 신전 같은 곳을 발견 알고 보니 이곳은 ~

판테온

판테온은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의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로마의 건축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인 서기 125년경에 재건되었다. 모든 고대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전 세계를 통틀어 당대 건물 가운데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역사적으로 판테온은 쭉 사용되어 왔다. 현존하는 건물의 설계는 트라야 누스 황제의 건축가인 다마스쿠스의 아폴로 도루스가 했다는 견해도 있으나, 이 건물 자체와 건물의 설계는 하드리아누스 황제나 그의 건축가들이 공로했을 가능성이 크다. 7세기 이후부터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판테온은 현재 로마에서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돔 구조이다. 바닥에서 원형 구멍까지의 높이와 돔 내부 원의 지름은 43.3m로 같다.

말도 안 되게 웅장한 판테온의 역사는 깊다.! 위에 판테온에 대한 설명이 조금 나왔지만 아무래도 역사를 알아야 더 많은 것 들이 보일 것이다. 이탈리아 건축의 첫 시작이라고 불리는 판테온 어떤 역사가 숨어 있는지 구글 형님이 알려준 데로 한번 옮겨서 인용해보았습니다.!

고대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 이후, 아그리파는 그의 집정관의 세 번째 임기 중에 원래의 판테온을 건립하고 이를 신에게 봉헌하였다(기원전 27년). 아그리파의 판테온은 서기 80년에 로마에 일어난 대화재 때문에 다른 건물과 함께 불타 없어졌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서기 125년경에 하드리아누스 황제 재위 중에 세워진 것이다. 원래 있던 명문(“M·AGRIPPA·L·F·COS·TERTIVM·FECIT”. Marcus Agrippa, Lucii filius, consul tertium fecit를 의미하며, “’루시우스의 아들인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만들었다.”라는 뜻이다.)이 새로운 건물의 정면(파사드)에 덧붙여졌으며, 하드리아누스가 계획한 로마 전역에 걸친 재건 계획의 일부로 이 건물은 완전히 재건되었다. 하드리아누스는 동방으로 널리 여행했으며, 그리스 문화를 극히 칭송한 국제적인 황제였다. 그는 모든 신들에게 바쳐질 신전으로 판테온을 건립했으며, 이는 로마 제국 내 로마의 신들을 믿지 않거나 다른 이름으로 로마의 신들을 섬기는 백성을 위한 일종의 혼합주의적인 행위였다. 이 건물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콘크리트에 쓰인 소란 반자는 거푸집에 부어졌으며, 이는 굳기 전까지 아래에 가구 구조를 만들어 지탱했다. 그리고 원형 구멍을 통해 빛을 받아들이게끔 하였다.

그리스계 로마 사람으로 원로원 의원과 집정관을 지낸 로마사(史)의 작가 카시우스 디오는 판테온이 재건된 지 약 75년 후에 책을 저술했는데, 실수로 이 건물을 하드리아누스가 아닌 아그리파의 공으로 돌렸다. 디오의 책은 판테온에 대한 가장 당대에 근접한 저술로 보이며, 이 건물의 기원과 목적이 서기 200년까지도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 아그리파는 판테온이라 불리는 건물을 완공했다. 이 건물이 마르스와 베누스를 포함한 많은 신의 조상들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하늘을 닮은 건물의 둥근 천장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본다.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史), 53.27.2) ”

판테온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카라칼라 황제에 의해 서기 202년에 보수되었고, 이를 기념하는 작은 비석이 세워졌다. 이 비석에는 “pantheum vetustate corruptum cum omni cultu restituerunt(세월에 의해 낡은 판테온을 그들이 모든 정성을 들여 보수하였음)”라는 글이 새겨졌다.

중세

판테온의 열주 현관 아래 부분. 이 열주 현관의 코린트식 오더는 르네상스와 그 이후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609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 포카 스는 판테온을 교황 보니파시오 4세에게 넘겨주었다. 보나파시오 4세는 이 건물을 산타 마리아 아드 마르티 레스(Santa Maria ad Martyres)라는 이름의 성당으로 개축한 다음 축성(祝聖)하였다(현재는 산타 마리아 데이 마르티 리[Santa Maria dei Martiri]로 개명).

판테온은 기독교 성당으로 개축된 덕분에 상당수의 고대 로마의 건물들이 중세 초기에 겪은 파괴와 약탈 등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파울루스 디아코누스는 663년 7월 로마를 방문한 콘스탄스 2세에 의해 자행된 건물들의 약탈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 그는 로마에 12일간 머물면서 고대 로마의 금속으로 된 모든 장식들을 끌어내 버렸다. 심지어 한때 모든 신들을 찬미하고자 세워져 판테온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지금은 옛 통치자들의 합의에 따라 순교자들의 무덤이 된 (축복받은 마리아) 성당의 지붕까지도 벗겨 냈다. 그리고 그는 건물에서 청동 타일을 벗겨내어 다른 장식품들과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보냈다. ”

움베르토 1세의 무덤 수 세기 동안 건물의 외부를 장식하던 양질의 대리석들이 없어져 버렸으며, 심지어 이 건물의 벽에 붙어 있던 기둥의 머리 부분은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판테온의 두 기둥은 건물의 동쪽에 접한 중세 건물들 때문에 잘려나가 없어져 버렸다. 17세기 초반 교황 우르바노 8세는 현관의 청동 천장을 벗겨 내고 중세풍의 종탑을 카를로 마데르노가 설계한 (19세기 후반에 없어진) 쌍둥이 탑으로 교체했다. 그 외에 없어진 것은 외부의 조각상들로 아그리파의 명문(銘文) 위의 페디먼트를 장식하던 것이었다. 대리석으로 된 실내 장식과 거대한 청동 문은 엄청난 복원 작업을 통해 끝까지 살아남았다.

르네상스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판테온은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에 묻힌 사람들 가운데는 화가인 라파엘로와 안니발 카라치, 작곡가 아르칸젤로 코렐리, 건축가 발다사레 페루치 등이 있다. 15세기에 판테온은 그림들로 장식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멜로초 다 포를리의 성모영보이다. 브루넬레스키와 같은 건축가들은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설계할 때 판테온을 참고했으며, 판테온을 그들 작품에 대한 영감으로 취급받았다.

교황 우르바노 8세(1623~1644)는 판테온 현관의 청동으로 된 천장을 녹일 것을 명령했다. 청동 대부분은 산탄젤로 성의 방어를 위한 사석포(射石砲)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으며, 남은 청동은 교황 국무처가 다른 여러 작품을 위해 사용했다. 한편, 청동은 베르니니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제대 위에 있는 발다키노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교황청에서는 청동의 대략 90%를 대포를 만드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며, 발다키노의 청동은 베네치아에서 공수해온 것이라 한다. 한편, 이에 대해 로마에서는 “Quod non fecerunt barbari, fecerunt Barberini”(야만인 barbarian들도 하지 않았던 것을 바르베리니 가문[우르바노 8세의 가문]이 했다.)와 같은 매우 풍자적인 격언이 등장했다.

1747년 돔 아래의 가짜 창문이 있는 광대한 프리즈가 “복원”되었으나, 원래의 것과는 조금밖에 닮지 않았다. 20세기 초반에 원본의 한 조각이 르네상스 드로잉과 그림들로부터 재구성되어, 패널 일부로 다시 만들어졌다.

근대

여기에는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움베르토 1세 두 왕이 묻혀 있으며, 움베르토의 배우자인 마르게리타 왕비 역시 이곳에 묻혀 있다. 비록 이탈리아는 1946년 이후 공화국이 되었지만, 이탈리아 군주주의 단체의 지원자들은 판테온에 있는 왕족 묘지 주변을 감시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공화주의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이탈리아 문화유산부에서 이 건물의 치안과 유지를 담당하고 있었음에도, 교황청 당국에서는 이러한 감시 행위를 승낙하였다.

판테온은 아직도 가톨릭 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미사가 집전되고 있는데, 특히 중요한 축일이나 결혼식 등에 행해진다.

잘 읽어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본인은 각도시의 역사적인 건물에 도착하면 검색해서 3번 정도를 정독하고 다시 한번 본다. 그럼 정말 안보이던 것도 잘 보인다. (감흥 없는 건 아애 처다도 안본닷..) 판테온 내부를 구경하고 나와서 판테온 정문의 바로 앞에 탑 같은 게 보일 것이다. 이게 바로 ~

오벨리스크

로마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판테온 신전 앞 광장에 세워져 있는 오벨리스크로 정식 명칭인 Macuteo이다.

높이 6.34m(분수대 포함 14.52m)로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인 이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파라로 람세스 2세가 이집트 카이로의 고대도시인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Ra 신전 앞에 세워두었던 1쌍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로마의 Sant Maria sopra Minerva 근처의 이시스 신전 앞으로 옮겨졌다가 1711년 교황 클레멘스 11세에 의해 판테온 앞 광장을 장식하기 위해 Barigioni가 만든 분수 위에 세워졌다.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신전 입구나 광장에 세워졌던 것으로 후대에 많이 세워졌던 기념비의 기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직사각형 형태의 기둥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꼭대기에는 피라미드 형태를 하고 있다. 원래는 태양신의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으나 점차 파라오의 업적을 기록으로 남겨놓는 기념비의 성격이 강해진다. 오벨리스크는 신전을 구성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 그림자로 시간을 알 수 있는 해시계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를 비롯한 고대도시의 광장을 장식하는 장식물로 세계 각처로 반출되어 실제로 이집트에 남아 있는 것은 많지가 않다고 한다.

오벨리스크는 아스완에서 산출되는 거대한 화강석으로 만들어지며 전제가 1개의 돌로 만들어진다.

이탈리아 와서 역사공부 다 해 간다. 공부를 너무나 싫어했지만 여행을 와서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게 너무 공감이 돼서 몸에서 자동적으로 공부해야지 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가지 재밌는 질문을 드리자면 오벨리스크가 왜 하필 판테온 신전 정문 앞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알아보기 바란다. (어마어마한 역사적 진실이!!)

우리는 오벨리스크의 관광을 마지막으로 로마의 첫날의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에 입관할 텐데 정보에 대해서는 이미 오늘 글에 개시한 것처럼 입관할 때는 정확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배낭여행이 아니고 역사 여행이네 ㅠㅠ 그러지만 다른 곳은 몰라도 이탈리아의 역사는 알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2015년 02월 08일 일요일

로마의 첫 번째 이른 아침!

날씨 좋고 아침 조식 좋고 그냥 신이 난다.

우리가 오늘 가볼 곳은 어제 다녀온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 다.! 어제는 입관을 하지 않았지만 오늘 직접 한번 들어가 보겠다.! 우리는 배낭여행족이라 돈을 아끼기 위해 호텔에서 나온 아침 조식의 1회용 음식 들음 가방에 어마어마하게 챙겨 왔다. (엄청난 삶의 지혜를 로마에서 터득)

가는 방법은 어제와 동일하므로 윗글을 참조 ^^;

#입장료

성인: 12유로

학생: 9유로

위 요금을 내면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 팔라티노 언덕 세 곳을 전부 입장할 수 있다.!

(3곳 아무 매표소에서 표를 사면 됨.)

짠 순간이동 콜로세움에 도착!

콜로세움은

70년경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80년에 건축이 끝나 100일 축제 기간 동안 그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개막식을 올렸다. 콜로세움은 높이 48m, 둘레 500m 등 경기장 내부의 길이 87m와 폭 55m라는, 당시에 건립된 건축물 가운데 최대의 건축물이었다.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 레스)의 정원에 있던 인공 호수를 메운 자리에 세워졌다.

본래는 비공식 이름이었던 콜로세움(Colosseum)의 유래에 대해서는 원형 경기장 근처에 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청동상(Colossus Neronis)과 명칭이 혼동되었다는 설과 ‘거대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콜로 살레(Colossale)와 어원이 같다는 설이 있는데 중세에는 그 자체가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열리는 검투사 경기를 보러 찾아드는 5만 명가량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경기장은 또한 해상 전투를 재현하거나 고전극을 상연하는 무대로도 사용되었다. 검투사들은 보통 노예나 전쟁 포로들 중에서 운동 실력이 출중하고 용맹하게 잘 싸우는 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서로 결투를 벌이거나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사냥해 보여 로마 관중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으나, 검투사가 되면 이득도 있었다. 다른 노예들보다 생활환경이 훨씬 나은 군대식 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었고, 승리를 거둔 검투사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티투스는 등극하기 전인 70년에 유대 독립전쟁을 진압하고 10만 명의 포로를 데리고 귀환하였다. 그중 4만 명을 동원하여 콜로세움을 건축했다는 전설이 있다. 콜로세움은 검투사들끼리의 싸움이나 맹수들과의 싸움을 시민들에게 구경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콜로세움은 608년까지는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지만 중세에는 군사적 요새로 이용되다가 그 이후에는 성당이나 궁전 등의 건축에 사용될 자재의 제공 터가 되었다.

콜로세움은 4만 명에서 7만 명까지 앉을 수 있으며 4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은 높이 10.5m의 도리아식 반원주, 2층은 높이 11.85m의 이오니아식 기둥, 3층은 11.6m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되어 있고, 4층은 관중들이 작렬하는 햇빛을 피할 수 있게 벨라 리움이라는 천막을 고정시키기 위한 장대 장치를 지탱하는 240여 개의 기둥들로 되어 있다.

이 천막을 펼치기 위해, 근처 오스티아 항구에서 배를 이용해 줄을 끌어당겼다. 이외에도 계단과 독립 공간, 즉 갈레리아가 있었다. 이 갈레리아는 이집트산 콩, 음료수 등을 파는 상인들의 휴식공간으로 많은 시민들이 여기서 조우했다. 경기장 바닥은 모래로 덮이고, 곳곳에는 사냥장의 분위기를 살려 나무와 구릉을 설치하였다. 바닥 밑에는 노예들과 맹수들을 수용하던 각종 우리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바다에서의 싸움 장면도 연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닥 전체에 물을 가두는 일이 용이하지 않아 별도의 공간을 따로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의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도미티아누스의 건축가 라비 리우 스라고 하기도 하고, 가운 덴키 우스라는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단지 추측일 뿐이다.

오랜만에 사진 대방출. 외국인 커플 핸드폰에 나도 나오기 모드 ~ 나는 콜로세움에 조금 편하게 다가가기 위해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촬영 장소가 이곳 콜로세움 인 것에 대단히 흥미를 느껴서 찾게 되었다. 그런데 소름인 건 로마의 콜로세움이 아니고 튀니지 국가의 콜로세움이 또 있었다. ㅠㅠ 완전 헛다리 집 헛다는…

그리고 이제 우리식 점심 먹을 시간 ~

호텔의 조식들을 쟁여 왔다.! 야무지게 먹는 여친님. 저곳에서 먹고 매우 깨끗하게 치우고 갔다. 그런데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 비가 온다..ㅋㅋ 먹다 말고 식량들을 가방에 다시 넣고 비를 피해야만 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비를 맞고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콘스탄티누스 1세의 즉위 10년을 기념하여 원로원이 세운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312년 로마에 진군할 때, 대낮에 십자가와 “이것으로 이겨라”라는 환상을 전군(全軍)과 함께 보고 막센티우스 군(軍)을 티베르 강 근처에서 격파했는데, 황제의 그때 싸움 장면이 이 문의 부조(浮彫)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 사건은 기독교 공인과 제국의 통일에 획기적인 것이었다.

문은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세 개의 통로가 있으며, 일부는 다른 건축에서 옮긴 것이다. 로마에 있다. 콘스탄티노플에는 대신에 ‘선량한 양치기의 상(像)’이 놓여 있다.

어제부터 이곳 콜로세움에 와서 줄 곧 궁금했었는데 너무 개선문처럼 생겨서 파리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 인가 싶었는데… 전혀 역사가 달랐지만 개선문을 지었을 때도 카피는 창조의 어머니였다. 파리의 개선문의 롤모델이 바로 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였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지하철 3호선의 독립문역에 내리면 보이는 독립문의 롤모델이 파리의 개선문이라는 사실!

그렇게 흐린 개선문을 다 보고 날씨가 흐린 상태에서 포로 로마노에 입장을 해야 했다. ㅠ 콜로세움에 입장한 표를 가지고 포로로마노에 입장이 가능 하기에 비가 그치고 바로 입장했다. 날씨 탓인지 사진을 많이 안 찍었다.

포로 로마노 지도

< 1. 타불라 리움 2. 콩코르디아의 신전 3.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신전 4. 사투르누스 신전 5.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 6. 움 벨리 쿠스 7. 로스트라 연단 8. 원로원 9. 비아 사크라 10. 비살리카 율리아 11. 포카 황제 기념 원기둥 12. 바실리카 아이 밀리 집 13. 율리우스 카이사르 신전 14. 카스토르 폴룩스 신전 15. 베스타 신전 16. 베스타 뮤녀의 집 17. 파우스티나의 신전 18. 로물루스 신전 19. 막센티우스 황제 바실리카 20. 베누스와 로마 신전 21. 티투스 개선문 22. 율리우스 카이사르 포룸 23. 아우구스투스 포룸 24. 평화의 신전 25. 네르바 황제 포룸 26. 트라야 누스 황제 포룸 27. 트라야 누스 시장 >

사진이 없기에 하는 수 없이 포로 로마노에 대한 건물의 역사 정보는 투어팁스의 포로 로마노 정보를 인용하겠다.

사진은 많이 못 찍었지만 포로 로마노에서만 찍을 수 있는 콜로세움의 전경과 함께 나의 자태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만큼을 꼭 찍었다.

(아무리 봐도 날씨 너무 흐림 ㅜㅜ )

이렇게 콜로세움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흐린 날씨를 안고 길을 나섰다. 도착한 곳은!

베네치아 광장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광장이다. 1871년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으며, 현재는 테르미니 역과 함께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광장 안에는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 있다.

아는 만큼 보였지만 그래서 아는 만큼만 보고 또다시 떠돌이 여행객 모드!

떠돌다 보니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내취향 ㅠ) 저건 얼마지 오랜만에 김어준 씨의 어록 등장 ㅋㅋ 지금 행복해야 하는데 살 돈이 없었다… 오후가 한참 지나서 저녁이 될 즈음 하늘은 조금씩 맑아지고 있었다. 그사이 걷다 보니

진실의 입

이탈리아에 있는 것으로,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한쪽 벽면을 장식한 진실의 입은 지름 1.5m이다. 원래는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되었었다. 진실의 입이란 이름은 중세 시대 때 사람들을 심문할 때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려도 좋다고 서약하게 한 데서 유래했다.

남들 다 하는 사진 포즈 저사진을 찍을 때 앞에 줄을 서 있기 때문에 시선 강탈당해서 엄청나게 집중된다. 부담스러워서 빨리 찍고 나오게 만든다.. (늦게 나오면 눈치 겁나줌..)

어제와 오늘 하루 아주 역사에 대해서 빠삭히 알아간다. 역사에 대한 내용은 거의 구글에 검색하여 위키백과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위키백과가 내가 알고 있는 역사의 진실을 좀 더 디테일하고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은 짧고 얇기 때문에 위키의 힘을 빌려 썼다. 그러니 글을 보며 와 브런커 이 사람 전공이 역사 인가?라고 생각 안 하셔도 된다. ^^

오늘 역사에 대해 많이 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내일은 세계에서 제일 자그마한 국가 바티칸시국에 입장한다.! 고로 다음 게시글은 바티칸 투어와 남부 투어를 위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가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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