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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아즈텍 원주민들은 한국인의 후예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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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원주민 이야기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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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원주민 이야기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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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멕시코의 원주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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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원주민 정책과 종족정체성: 메스티소와 원주민의 상호작용 :: 기초학문자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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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원주민 정책과 종족정체성: 메스티소와 원주민의 상호작용 :: 기초학문자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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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원주민 정책과 종족성 : 메스티소와 원주민의 관계 – 라틴아메리카연구 –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 논문 – DB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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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원주민 정책과 종족성 : 메스티소와 원주민의 관계 - 라틴아메리카연구 -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 논문 - DB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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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원주민의 자치(autonomía)를 위한 운동 : 사빠띠스따운동을 중심으로 – e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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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원주민의 자치(autonomía)를 위한 운동 : 사빠띠스따운동을 중심으로 - e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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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원주민 이야기

멕시코 원주민 이야기

(멕시코의 행정구역)

한반도 크기의 9배에 달하는 광대한 국토와 약 1억 3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멕시코는 대표적인 다인종 국가이다. 이 땅의 원래의 주인은 여타 아메리카 국가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인디언이다. 인종차별을 근원적으로 방지하기 위하여 인구 조사시 인종구분은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흔히 메스티조(Mestizo)로 불리는 인디언과 백인의 혼혈인종이 약 60%를 차지하고 원주민 인디언이 약 20%, 백인이 약 15%, 기타가 약 5%로 추정되고 있다. 인종 간 갈등을 피하고 단일 정체성으로 멕시코 국민의 대통합을 이루어 내기 위한 이념적 근거로 ‘완전한 혼혈인(cosmic race)’을 이상형으로 지향하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연유로 비록 스페인어가 전국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공식 언어(official language)로 지정하지 않고 68개의 원주민 언어와 함께 공인언어(recognized language)로 지정하고 있을 뿐이다. 원주민과 메스티조의 인구가 백인을 크게 능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중남미 국가의 경우에도 대부분 그러하듯이 소수의 엘리트 백인들이 정치적/경제적 파워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지위는 비교적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다.

미국이 백인 중심의 강대국을 건설하려는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인디언 학살과 같은 인종청소 성격의 비인도적 사건이 무수히 발생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멕시코에서는 인디언과 백인의 혼혈 정책을 추구한 탓에 그런 비극적 수난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같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에는 백인 이주민들의 정착지를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인디언부족들과의 개별적인 충돌이 불가피하였으나 멕시코의 경우에는 스페인군이 1521년에 아스텍이라는 대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중남부 멕시코 일대를 일거에 점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부와 북부로 식민지를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예상외로 인디언들의 거친 저항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스페인과 멕시코 독립정부는 인디언을 인종청소의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스페인제국의 신민 또는 멕시코의 국민으로 취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는 공식적인 인종별 계급제도에 의거 인디언들은 백인에 비하여 현저히 불리한 대우를 감내하여야만 했다. 1821년 멕시코의 독립 후에 비록 계급제도가 법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최하층민으로서의 인디언의 사회적 지위는 별로 나아진 게 없었다. 말하자면 내부 식민지화(internal colonization)의 희생양이 된 모양새이다.

멕시코 남부의 이른바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 지역에서는 약 4천 년 전부터 수준 높은 문명을 발전시켰다. 특히 마야문명의 과학적 우수성은 많은 사람들을 놀래게 만든다. 스페인군의 침입까지 번성하였던 아스텍 제국 역시 찬란한 문명을 구가하고 있었다. 이렇듯 고대 문명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까닭에 멕시코는 아메리카 국가 중에서는 가장 많은 28 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스페인의 멕시코 점령 초기에 스페인에서 파견된 종교인과 학자들은 아스텍 지도층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과거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스페인어를 빌어 현지 언어로 기록하도록 만들어 방대한 문헌을 남겼는데, 현대에 와서 과거 인디언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아쉽게도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는 인디언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옛 문헌들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메소아메리카 문명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발전한 고대문명)

멕시코 중남부에 위치한 메소아메리카 지역은 남미의 안데스 지역과 함께 세계6대 고대문명발상지에 포함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4천 년 전에 이 지역에서 올멕 문명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이후 마야문명, 테오티우아칸문명, 톨텍문명 등이 뒤를 이어 발전하였으며 14세기 초반에는 아스텍 문명이 출현하였다. 이러한 고대문명에 관하여는 필자의 저서 ‘인디언의 길’(세창미디어 발행, 2015년) 제1장에서 상세히 논의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코자 한다.

(마야인들이 건설한 피라미드 사원)

아스텍제국의 패망과 원주민들의 끈질긴 저항

1325년 오늘날 멕시코시티가 위치하고 있는 테노치티틀란에 수도를 정하여 건설된 아스텍은 주변의 여러 도시국가들을 차례로 점령하거나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만들어 1520년 무렵 스페인의 코르테스에 의하여 완전히 패망하기 전까지는 한반도의 1.5배 크기의 영토를 지닌 대 제국으로 성장하여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아스텍은 피점령국에 대하여 인신공양과 지나치게 무거운 조공을 강요함으로써 많은 원성을 샀다. 코르테스는 이러한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아스텍에 불만이 많은 부족을 스페인의 우군으로 끌어들여 보다 효과적으로 아스텍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병력의 수에 있어서는 아스텍이 스페인을 크게 앞섰으나 스페인의 기병대와 화승총 등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스페인은 아스텍제국과의 전쟁에서 비교적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아스텍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패망과정에 관한 국내 문헌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까닭에 본고에서는 더 깊은 논의는 생략하고자 한다.

(아스텍제국의 영역)

1519년 2월부터 1521년 8월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스페인은 아스텍을 의외로 손쉽게 굴복시키는 행운을 얻었으나 이후에는 북부와 남부로 식민지 확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면서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스페인과 원주민 간의 충돌 역사를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Acaxee Rebellion

Apache-Mexico Wars

Spanish conquest of the Aztec Empire

Caste War of Yucatán

Chichimeca War

Chumash revolt of 1824

Comanche-Mexico Wars

Mixtón War

Pima Revolt

Pueblo Revolt

Tepehuán Revolt

Tzeltal Rebellion of 1712

Yaqui Wars

Chiapas conflict

(1810년 뉴스페인의 영토)

이상과 같은 충돌 사례 중 대표적인 몇 개를 골라 별도의 항목으로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Mixtón War/Chichimeca War

스페인군이 아스텍 점령지로부터 북부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1540년에 Zacatecas 주의 Mixton 산 주위에서 원주민과 충돌하여 양측에서 각각 십 명 내외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다. 믹스톤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1550년에는 인근의 바히오(Bajío) 지역에서 치치메카 전쟁이 시작되어 1590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전쟁에서 식민지 정부가 무력 대결로는 인디언들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음을 인식하여 인디언들에게 충분한 물질적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원주민들로 하여금 식민지 정부에 대한 공격을 멈추도록 만들었다.

푸에블로 반란(Pueblo Revolt)

현재 미국 남서부에 위치한 아나사지 문명을 일으켰던 부족들의 후손들로 추정되는 푸에블로 인디언들(주니, 호피, 타오스 부족을 비롯하여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여러 종류의 인디언 부족을 통칭하는 말)이 연합하여 포페(Pope)라는 한 걸출한 지도자의 지휘 하에 1680년에 스페인 점령군의 폭압에 맞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이 나자 스페인 군과 식민지 정착민들은 멀리 남쪽으로 도망쳤다가 12년 뒤에야 엣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무력충돌로 400 명의 스페인인이 죽었고 인디언들도 적지 않은 수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푸에블로 반란 통에 우리를 탈출한 수 천 마리의 말들이 대 평원지대로 흩어졌는데 이 지역에 풍부한 기름진 풀 덕분에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후일 평원 인디언들은 야생마로 변한 이 말들을 길들여 사냥과 미국군과의 전투에서 매우 유용하게 써먹게 되었다.

코만치 전쟁(Comanche-Mexico Wars)

(코만치 인디언의 영역)

북아메리카 인디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코만치 인디언은 1821년부터 거의 50년 동안 멕시코와 텍사스 지역으로 넘나들며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가축을 약탈해갔다. 그 기간 동안에 코만치에 의하여 살해된 멕시코인과 텍사스인의 수는 수 천 명에 달하고 약탈당한 가축은 수 십만 마리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국경에서 가까운 북부 지방은 이 기간 동안 거의 폐허로 변했다고 한다.

원래 플래트강 상류 지역의 대평원 북부에서 생활하던 코만치 족이 1700년 무렵 텍사스 북부 등이 포함된 대평원 남부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그들은 흔히 ‘코만치의 땅’(Comancheria)이라 불리는 한반도 두 배 크기의 땅을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하였다. 전에 이 지역에 살던 아파치 족은 코만치에게 밀려서 미국 남서부 사막지역으로 옮겨갔다. 열악한 환경으로 쫓겨 온 아파치족은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위하여 멕시코 농장을 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840년까지는 코만체리아에서 멀지 않은 텍사스나 멕시코 북부 국경 지역의 농가를 대상으로 한 소규모의 습격이 일반적이었으나 1840년대 이후로는 약탈의 규모도 커졌을 뿐만 아니라 국경으로부터 1000km나 떨어진 지역까지 진출하여 때로는 태평양 연안에까지 나타났고 머지않아 멕시코시티에도 출현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였다. 코만치족의 습격으로 골머리를 앓던 두랑고(Durango) 등 국경 인근의 주들은 인디언 사살에 큰 현상금을 걸었다. 인디언 1 인 당 현상금은 200 페소로서 당시 노동자 한 사람의 연소득보다 더 큰 금액이었다고 한다. 코만치 인디언들은 주로 보름달이 비치는 밤을 틈타 약탈을 실행하였기 때문에 ‘Comanche Moon’이라는 시대의 유행어까지 생겼다.

코만치 족이 백인 농가를 습격할 경우, 아이들과 부녀자를 납치해 가는 일이 많았다. 납치해간 인질들은 훗날 몸값을 받고 풀려나기도 하나 부녀자의 경우 인디언의 아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여기서 납치와 관련된 한 특별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1836년 5월 코만치 족이 텍사스의 댈러스로부터 남쪽으로 약 160km 떨어져 있는 파커 요새(Fort Parker)를 공격하여 다섯 명을 죽이고 여자 두 명과 어린아이 세 명을 납치해 갔다. 납치 당시 9 살이었던 Cynthia Ann Parker는 인생의 대부분을 코만치 족과 함께 보냈는데, 성인이 되어서는 추장 Peta Nocona의 부인이 되어 Quanah Parker라는 이름의 아들까지 낳았다. 그 아들은 훗날 코만치의 추장이 되었으며 흔히 피요테 종교(Peyote Religion)이라 불리는 인디언식 교회를 발전시킨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905년 3월 4일 거행된 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의 취임식 행진에 다섯 명의 다른 인디언 추장들과 함께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존 포드가 감독하고 존 웨인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The Searchers'(수색자)가 1956년에 제작되기도 하였다.

야퀴 전쟁(Yaqui Wars)

멕시코 북부에 거주하는 야퀴 인디언 부족과 스페인/멕시코 군과의 무력충돌은 1533년에 시작되어 거의 400년간 지속되다가 1929년에야 끝났다. 이 지루한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멕시코 정부는 공중 폭격까지 동원하였다고 한다.

마야인의 독립전쟁(The Caste War of Yucatán)

옛 마야문명의 주역의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유카탄 반도의 사정도 멕시코의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시절의 계급제도의 잔재로 인하여 원주민들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는 최하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오랜 갈등 끝에 스페인이 유카탄 반도를 식민지화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글로 인하여 스페인계 정착민들은 북서쪽 해안지역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을 뿐 동남쪽은 여전히 마야인들이 자신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영위해 왔다.

1820년 이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무렵 유카탄은 다른 일부 중미국가와 마찬가지로 멕시코연방에서 벗어나서 별도의 독립국가 설립을 추진하였다. 1840년대 들어 반도의 북서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백인 등 비마야인들이 대규모로 사탕수수와 henequen 농장을 개척하기 위하여 동남부의 인디언 영역을 무단 침범해 들어왔다. 게다가 농장 인부로 고용된 원주민에게는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지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비인간적인 학대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이러한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기 위하여 마야인들은 1847년 7월 30일에 백인 등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였다. 마야 반군은 1848년 봄에는 유카탄 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마야인들은 자신의 독립국을 수립하였으며 영국은 이들의 독립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수세에 몰려 다급해진 백인 등 비 마야인들은 위기 탈출을 위하여 유카탄의 독립을 포기하고 멕시코로 복귀하기로 결정하고 멕시코의 군사지원을 받았다. 이후 수년간 멕시코 군과 마야 반군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결과 1850년대 들어서는 반도의 북서부는 비마야계의 영역으로 그리고 동남부는 마야계의 관할구역으로 나눠지면서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1884년부터 공세를 강화한 멕시코 군이 1901년 마야의 수도 찬 산타 크루스(Chan Santa Cruz)를 탈환함으로써 공식적으로는 마야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이후로도 1933년까지 산발적인 총격전이 이어졌다. 한 기록에 의하면 50년 이상 지속된 이 전쟁으로 인하여 4만 내지 5만 명의 인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치아파스 주의 갈등(Chiapas conflict)

(Chiapas 주의 위치)

멕시코의 31 개 주 중 하나인 치아파스 주는 멕시코의 최남단에 위치한 주로서 과테말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옛 마야문명의 후예를 포함하여 다양한 부족 출신의 원주민 약 350만 명이 살고 있다. 치아파스는 Campeche, Oaxaca, Quintana Roo 그리고 Yucatán 주 등과 함께 가장 많이 ‘원주민화’(Indianized)된 주 중의 하나이다. 다른 지역의 원주민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의 인디언들도 수백 년 동안 내려온 구조적 모순으로 인하여 열악한 사회적/경제적 환경 속에서 궁핍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게다가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 체결과 함께 원주민 생계의 기반이 돼 온 에히도(ejido) 농장이 민영화됨으로써 더욱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마르코스(Subcomandante Marcos)는 ‘사파티스타인민해방군’ 곧, Zapatista Army of National Liberation (EZLN)을 결성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의 이름은 과거 멕시코혁명 당시 농민운동을 주도한 사파타(Emiliano Zapata)에서 가져 왔다. 반란의 최고책임자인 마르코스는 자신을 부사령관(Subcomandante)으로 칭하고 사령관으로는 여성 동지(Comandante Ramona)를 추대하였다. 스키마스크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마르코스의 말 탄 모습을 볼 때면 전설적인 공산혁명가 체 게바라를 연상케 한다.

1994년 1월 1일 시작된 무력충돌은 12일간의 교전 끝에 일단 휴전에 들어갔다. 이후 멕시코 정부와 반군 간에 지루한 평화협상이 이루이지는 과정에 때때로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멕시코 정부는 마르코스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반대하며 자유적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평화적 운동가임을 인정하여 무력에 의한 진압을 자제하고 줄기차게 대화를 통하여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이다. 멕시코 정부는 치아파스 주에 있는 라칸돈 정글(Lacandon Jungle)을 은신처로 활용하고 있는 사파티스타 해방군과 전면전을 벌릴 경우 수많은 인명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와 같은 멕시코 정부의 태도는 다분히 국내외의 여론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마르코스는 자신들이 처한 현실과 주의/주장을 인터넷을 이용하여 전 세계에 알려 수많은 관심 있는 기관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데에 성공하였다. 한 예로, 1997년 EU와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앞둔 시점에 멕시코군의 공격으로 반군 측 주민 45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여 전세계에 알려졌는데, EU는 이 사건을 문제 삼아 협정 체결을 보류할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1996년 2월 16일 양측 간에 평화협정(The San Andrés Accords

February 16, 1996)이 체결되어 문제가 해결되는가 싶었는데, 멕시코 정부가 당초 약속한 원주민의 자치권과 기타의 권익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두 진영 간의 갈등은 산발적인 력충돌과 함께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마치 미국 인디언들이 그들의 권익을 되찾기 위하여 몇 차례나 대륙횡단걷기운동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사파티스타 해방군은 치아파스주를 출발하여 12 개의 주를 거쳐 멕시코시티를 향하는 대 장정을 2001년 3월과 4월에 걸쳐 실시하였다.

가장 최근의 무력 충돌은 2014년에 발생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교사 1 명이 사망하고 15 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파티스타 해방군은 2005년 6월 28일 제6차 선언문(The Sixth Declaration of the Lacandon Jungle) 발표를 통하여 더 이상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였다.

치아파스 원주민들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기나긴 투쟁의 결과로 자신의 땅을 소유하게 되고 부족의 자치권도 되찾아 올 수 있게 되었다. 원주민 언어를 학교에서 가르칠 수도 있게 되었고, 지역사회 개발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시행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은행, 회사 등의 제도들도 자신들이 가장 좋다고 믿는 방향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 점 등에서 크게 만족을 얻고 있다.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말 탄 모습)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인종별 계급제도

멕시코를 비롯하여 스페인이 지배하던 옛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인종 간 결혼이 성행하여 여러 종류의 혼혈인종이 생겨났다. 아프리카로부터 흑인 노예들을 들여왔기 때문에 흑인종도 혼혈에 한 몫을 했다. 혼혈인종 중에서는 백인과 인디언과의 혼혈인 메스티조가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스페인제국은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종별 계급제도를 시행하였다. 인종계급의 최상위에는 에스파뇰이라 불리는 유럽계 백인이 자리하고 아프리카로부터 건너온 흑인은 최하층민 대접을 받았다. 혼혈인들은 백인의 피가 섞인 비중에 따라서 곧, 피부색이 흰 정도의 순서에 따라서 계급서열이 정해졌다.

Españoles (Spaniards)

– Peninsulares (Spaniards and other Europeans born in Europe)

– Criollos (Spaniards and other Europeans born in the Americas)

Indios (Native Americans)

Mestizos (mixed Native American and European)

Castizos (European with some Indigenous)

Cholos (Native American with some Mestizo)

Pardos (mixed European, African, and Native American)

Mulatos (mixed African and European)

Zambos (mixed Native American and African)

Negros (Africans)

Moriscos (former Muslims who converted to Christianity)

Other terms

혼혈에 혼혈을 거듭하다 보니 나중에는 30 종이 넘는 인종이 생겨났다. 그런데 실제로는 운영상의 편리를 위하여 대체로 크게 7 종류로 분류하여 관리하였는데, 계급서열은 Spaniards, castizos, moriscos, mestizos, mulattoes, Indians, and Africans의 순서이었다. 인종계급이 높을수록 특권은 커지고 부담은 줄어들고, 그 반대로 계급이 낮은 계층은 특권은 별로 없는 대신에 더 무거운 세금과 공물(tribute) 부담을 지는 구조로 계급제도가 운영되었다. 멕시코의 독립과 함께 법률에 의한 공직적인 카스트제도(casta system)는 사라졌지만, 300 년 이상 지속된 식민통치로 인하여 사회적 계층이 이미 고착되어 버린 탓에 하위층 인종이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식만지배 시절 다양한 형태로 출현한 인종은 당시 풍속화의 주제로 많이 취급되었다.

(16 종류의 인종을 그린 회화)

원주민 출신 대통령 후아레스(Benito Juárez)

1806년 3월 21일 남부 멕시코의 오악사카 주(Oaxaca)에서 출생한 사포텍(Zapotec) 인디언 부족 출신의 후아레스는 1857년 남북아메리카를 통틀어 인디언으로서는 처음으로 멕시코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1872년 병사하기까지 무려 15년간이나 대통령의 자리를 지켰다. 1847년부터 1852년까지 고향인 오악사카 주의 주지사를 역임한 후 1855년 혁명 때에는 산타 안나를 타도하고 후안 알바레스가 이끄는 자유당(liberales) 임시내각의 법무장관이 되었다. 1857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공화국헌법을 제정하고 가톨릭교회와 정치의 분리, 가톨릭교회 재산의 몰수, 토지개혁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는 동안 기득권 세력으로부터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쳤으나 국내외로부터의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개혁을 밀고나가 멕시코공화국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후아레스는 멕시코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서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런 연유로 그의 생일은 멕시코의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후아레스를 주제로 한 영화도 많이 제작되고 국내외 많은 곳에 그의 기념관과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20 페소 멕시코 지폐에 그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다.

원주민의 최근 상황

20세기 초 멕시코혁명을 겪으면서 원주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원주민에 대한 동정적 여론이 확산되었다. 인디언 친화적인 뜻있는 문화 예술인들이 인디언의 열악한 처지를 널리 알리고 이를 개선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대표적인 예술인이 우리나라에서도 연전에 특별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고 국내에서도 상영된 영화로도 소개된 바 있는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Frida Kahlo and Diego Rivera) 부부 화가이다.

2003년에 제정된 ‘인디언 언어에 관한 일반 법률’(General Law on the Linguistic Rights of Indigenous Cultures)에 의거 68개의 원주민 언어가 스페인어와 대등한 자격으로 국어(national language)로 인정받게 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약 900만 명의 원주민들은 스페인어 대신 자기 부족의 언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멕시코의 원주민 정책과 종족정체성: 메스티소와 원주민의 상호작용

현대의 다원화된 사회에서 종족간의 관계가 갈수록 중요해지면서 종족성(ethnicity) 혹은 종족정체성(ethnic identity)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분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실시되지 못한 상태에서 각자의 이론적 관점과 방 …

현대의 다원화된 사회에서 종족간의 관계가 갈수록 중요해지면서 종족성(ethnicity) 혹은 종족정체성(ethnic identity)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분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실시되지 못한 상태에서 각자의 이론적 관점과 방법론을 이용하여 원주민과 메스티소의 종족성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 정체성을 둘러싼 사회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쉽지 않게 된다. 특히 멕시코의 원주민들은 다른 사회의 소수민족들처럼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거주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원주민의 종족정체성은 매우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식민시대 이후부터 피부색에 의해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전통의 계승발전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에서 서구사회와는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사회적·생물학적 성격만으로 멕시코 원주민과 메스티소의 종족정체성을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종족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를 보완하려면 먼저 원주민 사회와 메스티소 사회를 각각 독립된 것으로 생각하고 따로 조사할 것이 아니라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비교연구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즉, 원주민 사회와 비원주민 사회인 메스티소 사회에서 종족정체성은 어떤 방식으로 규정되고 이것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지를 밝혀낸 다음에 이런 종족정체성이 상이한 종족 사이의 사회관계에서는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할 것이다. 원주민이나 메스티소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인식하는 방식을 살펴본 다음에(Urban and Sherzer, 1991:5 참조), 외부인들은 그들을 어떻게 정의하는 지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종족성의 형태와 내용은 과거와 현재의 특정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이다. 특히 종족정체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될 때는 갈등과 경쟁이 일어났을 때이다(Stephen, 1996:17-18). 그렇기 때문에 평상시보다는 종족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상이한 상황에서 종족 정체성이 받아들여지고, 해석되며, 변화되는 형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적 혹은 집단적,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 상황에서 이런 개념들이 적용되는 형태를 연구할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해서 이 연구에샬예璿陟뻔졍?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종족정체성은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종족정체성을 개인이나 집단이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인들이 그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는 종족정체성이 스스로 생각하는 집단 내부의 내적 담론과 외부인들이 생각하는 외적 담론 사이에 차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인식의 차이가 있다면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과 근거를 밝혀야 할 것이다.

둘째, 센서스를 비롯한 여러 통계에서 발견되는 국가의 정책과 관련된 소위 원주민과 메스티소의 정의는 실제적으로 원주민과 메스티소의 주관적 판단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원주민의 정의는 과거에는 순수한 원주민의 혈통을 유지하면 된다는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는 순수한 원주민의 피를 가진 사람들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이제는 원주민의 문화를 소유하면 원주민이라고 분류되었다. 즉, 피부색과 같은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언어나 원주민 의상 등 문화적 특징의 소유여부가 종족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화적 분류는 실제 생활을 완전히 반영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통계에서는 특정한 종족으로 규정된 사람이 자신의 주관적 판단으로는 다른 종족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흔히 발생하고 있다.

셋째, 개인의 정체성도 주어진 사회경제적, 정치적 조건에 따라 변화하고 일생을 통해서도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외부사회와의 접촉이 많은 경우에는 접촉하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종족정체성이 영향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메스티소의 경우에 백인들이나 피부색이 엷은 메스티소를 만날 때에는 자신을 원주민에 가깝게 인식하는 반면에 원주민을 만날 때에는 확실히 메스티소임을 강조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원주민이 원주민을 만나거나, 원주민이 백인이나 메스티소를 만났을 때에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넷째, 사회적으로 원주민과 메스티소의 정체성은 문화적 특성이나 개인의 주관적 판단보다는 자신이 거주하는 사회의 위치(도시사회, 도시부근의 농촌 마을, 고립된 산간 마을 등)와 마을의 규모(인구 수), 그리고 그밖의 지역적 특성에 훨씬 의존되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멕시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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